본원에서 치료후 출산한 환자의 스토리
○준코상・・・「언니가 되고싶다」라는 딸의 말을 듣고, 결정한 난자제공.
치료후 두명의 쌍둥이가 태어나, 즐겁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난자제공을 망설이고 있는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K상・・・아이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없는 저희는 이혼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저희 부부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길, 그 길이 난자제공입니다. 그 이후에…
일본 잡지 JINEKO 여름호에 홍지에서 치료후,
출산하게 된 산모의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선택한 길은 대만에서의 난자제공. 마음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때도
이겨내며 지내왔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최선”이라는 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단순한 생리불순” 이라고 생각한 H상에게 「배란이 불가능」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어떻게 해서든 가지고 싶어서 대만의 난자제공이라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지식도 없던 당시, 몸의 이상을 그냥 지나쳐버리고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벗꽃의 꽃잎이 봄의 마직막을 알리고 있는 4월중순.
H상(46세)과 남편(43세), 그리고 낮잠을 자고 막 일어난 귀여운 여자아이가 자택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H상과 남편은 2002년에 만났습니다. 남편의 직장에서 만나게 된 둘은 만남을 가지다 2년 후 결혼했습니다.
주변의 부러움을사는 사이가 좋은 부부였지만, 둘에게는 결혼전부터 아이에 관한 걱정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나서 생리 불순이 되어 반년에 1번 생리를 하거나,
아니면 더 오랫동안 생리를 하지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이를 가지고 싶어 했기 때문에 제가 아이가 안생길지도
모른다고 얘기해 이대로 결혼해도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라고 H상이 이야기했습니다.
이말에 「괜찮아」라고 즉각 대답한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먼저 제 자신의 몸의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 불임을 시작하게된 계기가 되었다.
당시 관동지방에 살고 있엇다는 H상. 결혼전 생리불순을 고치고자 집근처의 병원에 다녔습니다.
그때당시는 「아무튼 생리가 나오게 하기만하면 된다는 정도의 인식」만 있었다고 합니다.
호르몬 치료를 시작해도 생리가 순조롭게 나오는 때도 있었지만, 생리가 나오지 않는 달도 있어,
30세가 된 H상은 점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혼하고 남편의 고향으로 이사해,
환경에 매우 큰 변화가 있었지만, “불임”에 관해서는 아직도 무지했고,
생리를 나오게 하기위해서 조금더 좋은 병원을 찾아 전전했다는 H상.
그 인식이 변했던 것은 「출산할 생각입니까?」라고하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서였습니다.
아이를 낳고싶으면 불임치료를 하지않으면 안됩니다. 결혼전과는 다릅니다.
결혼하고나서 선생님의 말씀이 계기가 되어, 유명한 산부인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난포를 체크하고 혈액검사등의 검사결과 「저희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말씀하셨습니다.
살고있는 지역에서 제일 유명한 병원에서 안된다고 치료가 어렵다고 들었기때문에,
다른지역으로 옮겨 병원을 찾았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물론, 일본에서도 유명한 쿠마모토 시내의 병원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불임치료를 시작한 H상.
어느정도 난자채취가 가능해져 8회정도 체외수정을 진행했지만 착상이 되지않아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한번은 착상이 되어 8주째 심박도 확인이 됐지만 유산되어,
H상의 나이로는 불임치료를 계속할수 없다는 것을 자각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난포가 커지지 않아, 키타큐슈에 있는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으라는 소개장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H상은 41세. 남편이 운전해서 3시간은 달려야 도착하는 센토마자 산부인과의 통원이 시작됐습니다.
가능성이 있다면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센토마자 클리닉은 환자가 매우 많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치료법이라서 신선함도 있었습니다.
전문적인 클리닉에 왔구나, 가능성이 있을것 같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본격적인 불임치료가 시작되었지만 난포는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매우 갖고싶다고 저희 부부가 다나카 원장님에게 말씀드리니,
「H상 부부처럼 아이를 매우 원하는 부부의 경우, 국외에서 난자제공을 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특히 대만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에서 관리해 안심할수 있어,
이 방향으로 생각해보는것은 어떤가요」라며 설명해 주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처음으로 “난자제공”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선택지라고 생각해, 난자제공을 수령하기로 맘먹었습니다.
난자제공을 수령하기위해서, 먼저 대만의 클리닉에 직접 이야기를 듣기위해 대만의
홍지클리닉에 메일을 보내 비용과 치료내용, 언어적 문제,
그리고 성공률이 어느정도인지 등에 관해 문의를 했습니다.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아 불안함이 없어진후에 저희 부부는 대만으로 향했습니다.
혈액형, 피부와 머리카락 색, 가능하면 우리 둘과 닮도록
타이페이 시내에 있는 홍지클리닉의 장홍지 원장의 첫인상에 관해
H상은「활력이 넘치고 솔직한 느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북경어로 말씀하시는 원장님 사이에서 통역을 해주는
직원이 있어서 언어소통이 원활하게 된것같다고 느낀 H상 부부는, 난자제공자의 최종결정을 원장님에게
맡길정로도 신뢰감이 있었습니다. 「혈액형과 피부색과 머리카락 색이 동일한 등등,
가능하면 저희부부와 닮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택한 제공자가 저희 부부와 많이 닮았다고 직접 얘기해주셔서 믿기로 했습니다. 」
대만에서의 초진을 끝내고 일본에 돌아가서 센토마자 클리닉을 소개해주었던
쿠마모토의 병원에서 임신까지의 검사를 하기로 정해,
저희 부부는 일본과 대만에서의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자궁내막이 순조롭게 두꺼워지고, 대만에서는 냉동 보존되었던 남편의 정자로 수정란이 만들어져서,
자궁에 이식하기위해 저희부부는 두번째로 대만에 방문했습니다.
6개의 수정란중 가장 등급이 높은 2개를 H상의 자궁에 이식했지만,
역시 전과 같이 8주만에 유산하고 말았습니다.
남아있는 수정란은 4개. 다음에 이식을 하게되면 등급은 모두 높지않아,
임신의 가능성은 확실히 처음에 이식할때보다 떨어질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H상 부부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원장님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남아있는 4개의 수정란을 같이 이식하는것을 희망한다고 전했습니다.
등급이 거의 비슷하게 낮지만 2개보단 4개를 이식하는것이 확률이
더 올라간다고 생각해 가능성은 낮지만, 여기에 모든것을 걸고 싶었습니다. 」
이식이 가능한 자궁내막의 상태를 만들어, 3번째 대만을 방문해 4개를 이식했습니다.
그중 2개가 착상되었습니다. 1개는 확실히 착상이 되었지만, 나머지 1개는 아직 확실치 않았습니다.
「아마도 확률이 높아진게 아닌것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4주째에 확실하게 보였던 아이가 순조롭게 크고있다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과거의 힘든 기억들이 있어서 8주까지 안심이 되지않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산모수첩을 받고,
순조롭게 잘 크고있어 기뻤지만 마음을 놓을수 없었습니다.
임신검사를 하고나서 「이제서야 실감이 되고 안심이된다」고, H상은 얘기했습니다.
임신후기에는 혈압과 당뇨수치가 높아지고 몸의 붓기가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영향이 없도록 하기위해 식이요법이 필요하다고해서,
처음에 무척 당황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말씀하시는대로 듣고,
책이나 인터넷을 찾아서 실천하다보니 어느덧 출산일이 다가왔습니다.
저희 부부가 이겨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싶다.
남편의 곁에서 2678g으로 건강하게 태어난 유카짱. 자연임신이 어렵다고 알게된날,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고나서 유산한 날, 난자제공 수령을 하기로 결정한날.
여러번 상처받고 힘들게 보냈던 우리 부부에게 이제서야 우리 아이를 만나게되어,
「기뻐하다」「사람들이 모이다」라고하는 의미가 들어간 글자를 조합해 이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여자에게 불임의 원인이 있으면, 그 책임감의 무게가 자신을 억눌르게 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자기 혼자서는 어렵지만 부부둘이서 어떻게든 이겨낼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H상 부부는 불임으로 힘들어하는 환자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수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습니다.
「포기하지않으면 어떠한 결과라도 길은 열려있습니다.
부부 둘이서 잘 상의해서 꿈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해외 리포트 대만의 생식 의료 현황 취재
장홍지 원장(대만타이페이 홍지클리닉)
도쿄에서 비행기로 약 4시간 거리, 대만은 인기 관광지로서 뿐만 아니라
공업과 의료분야에서도 눈에띄는 성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난자제공에 관한 생식 의료 부분의 인기가 급상승 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많은 난자 수령자가 대만을 방문하는 현상에 대해
대만 타이페이 홍지클리닉의 장 홍지 원장님에게 들어보았습니다.
일본에는 없는 생식의료에 관한 법률이 대만에는 재정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1985년 타이페이시의 타이페이 영민 종합 병원에서 대만 최초의 체외수정 치료(시험관 아기)가 탄생하였습니다.
당시 대만에는 생식의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있지 않았고, 생식의료에 관한 의제가 주목되었습니다.
정식으로 제정되기까지 정자채취, 대리모 복제인간 등 많은 논란이
좀처럼 마무리 되지 않았지만 2007년 마침내 인공생식법으로 재정이 되었습니다.
인공생식법 법률 내용에 관하여 간단하게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먼저 불임 치료를 받으실 분들은 법률적으로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에게서만 가능합니다.
또 기증자에게서 제공된 난자와 정자를 사용할 경우에는 혈연 관계의 조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친등표 등의 자료를 정부에 제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욱이 기증자의 조건에 대해서 연령 상하한이 제한되어 있으며,
제공자가 과거에 제공한 난자 또는 정자로 수취인이 임신 출산에 이른 경우는
다시 기증자로서 다른사람에게 제공할 수 없습니다.
일본은 불임 치료 클리닉이 약 600개 시설이 있으며,
대학병원보다는 개인 병원이 많은편 입니다. 대만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국민 건강 공단에서 2017년 시첨 허가한 대만의 인공 생식 기구는 83채, 그 중 개인 병원은 32개입니다.
일본과 달리 대만의 불임 치료 센터는 대형 병원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불임 부부가 6쌍중 1쌍에 해당됩니다. 대만은 어떤가요?
국민 건강 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대만 국내 불임현상은 10~15%, 즉 7~10쌍중 1쌍은 불임커플입니다.
대만의 출산률은 최근 몇년간 1.1%대에 머무르고 있어 저출산 문제가 매우 심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불임에 원인이 있는게 아니라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높아져 대만에서는 고학력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려는 젊은사람들이 많아져 육아보다는
경제 활동을 중요시 하는 사회적 경향이 있기 때문 입니다.
대만과 일본의 불임 치료가 차이가 있나요?
대만사람은 개방적인 성격이 있지만 인공수정 중에서도 난자제공에 관해서는
알려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있는것 같으며, 인식의 차이가 있는것 같습니다.
다만 치료 내 큰차이는 일본에서는 받아들여 지지 않는 착상전진단(PGS검사)가 가능하다는 것 입니다.
미국에서는 필수 검사이지만 대만의 경우는 희망하는 분들에 한해서 검사를 실시 합니다.
일본은 많은 수령자분들이 희망하고 있습니다.
난자 제공자의 조건이 있나요?
기증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은 20~39세의 건강한 여성이며,
법률로 정해진 전염병과 성병 등의 검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전에 기증자로서 난자를 제공한 사람도 다시 기증자를 할 수 있는데
조건은 제공한 난자로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조건입니다.
난자 제공자의 정보는 어디까지 알 수 있나요?
수령자가 알 수 있는 것은 공여자의 혈액형, 인종, 피부색 세가지 입니다.
당연히 사전 상담으로 부부의 외모에 최대한 가깝도록 고려햐여 기증자를 선별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증자와 수령자는 서로 알 수 없으며, 태어난 아이들도 기증자도 서로의 알 권리는 인정되고 있지 않습니다.
난자 제공을 희망하시는 분은 어떤분들이 많이 있나요? 국가별 비율은 어떻게 되나요?
수령인은 고령으로 양질의 난자를 만들 수 없게 된 분들이나, 이미 폐경이 진행되신 분, 조발폐경을 진단받은 분들,
터너증후군 등 염색체 이상이 있는 분들, 방사선 치료나 항암치료로 인하여 난소 기능을 잃은 분들도 많습니다.
본원에서 연간 200명정도 매칭을 진행하는데 그 중 70%이상이 일본인입니다.
그 다음 중국인 한국인에 이어 필리핀인을 메인으로 아시아계 미국인도 있습니다.
요즘은 호주 홍콩 등에서 많은 문의가 있습니다.
해외에서 난자 제공을 받은 점에 관해 주의점이나 의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해외에서 난자제공을 받기 위해서는 스페인과 미국 등의 나라가 있습니다.
비용도 비교적 저렴하고, 미국보다 방문하기 쉽다는 이유로 대만에 방문하시는 분들이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설명회와 상담을 통하여 의사가 가진 기술과 잘 맞는지 판단을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장 장 홍지 선생님
대만 대학 의학부 출신.
미국 뉴욕 대학에서 생식 의학과 불임증을 연구.
2012년 홍지클리닉을 개원 이후 난자 제공을 받은 일본인 환자는
300명이넘으며 현재 태어난 아기는 100명에 이릅니다.
〇임신 스토리〇
병원에 방문하면 아기를 낳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조기폐경으로 난자가 자라지 않음」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부부는 불임 치료에 적극 참여,
최종 선택은 대만에서 난자 제공이였습니다.
「이제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당시 30대, 바로 아기를 낳을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처음엔 좌절,,,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진행한 불임 치료, 마침내 난자제공에 이르렀습니다.
30세, 이제 아기를 가질때…
「내가 불임…?」
친구의 소개로 20대 중반에 만나, 2년 후 1살 연상의 남편과 결혼한 마요씨(가명).
결혼할 때는 서로가 아직 30세 전이었고, 일도 바빠서 아직 아기를 가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30세가 된 마요씨는 이제 아이를 가지면 좋겠다 생각하고 반년정도의 기간 후
아기가 생기지 않으면 병원에 방문해야 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반년 후, 자연 임신이 되지 않아 병원행을 결심,
그러나 그때 남편은 아기를 가지는데 있어, 걱정이 많이 없었고 언젠간 되겠지라고 생각하여
병원의 예약이나 통원은 마요씨의 주도로 진행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엔 이런쪽에 전혀 지식이 없어서 병원에 가기만 하면 아기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집에서 가까운 산부인과를 방문하였습니다’
과배란 클로미드 등을 복용하고 자연주기법을 진행하였으나 난자는 자라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 이러한 분들은 많이 없고… 대체로 이 약을 쓰면 난자가 자라는데…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전문 불임 치료 선생님이 아니라서 그런거라 생각하였습니다.
그 뒤 FSH수치가 꽤 높았기 때문에 3개월 정도 카우프만요법을
진행하였는데도 안타깝게도 난자는 자라지 않았습니다.
반년정도 다니다 선생님께서 다른 도시에 있는 불임치료 전문의를 소개해주셨습니다.
다른도시까지 가서 치료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죠? 이 곳 내에서는 치료할 수 없나요? 라고 생각이 들었고,
우선은 불임 치료를 하고 있는 도시 내의 병원을 조사, 통원.
하지만 지금까지의 같은 치료 방식을 내려주면서 저는 다른 도시의 불임 치료 전문의를 찾기로 하였습니다.
이 때 제 스스로 처음으로 불임이라는 현실을 느끼고
남편과 협조하지 않으면 안되는 구나하고 느낀 저와 남편이였습니다.
조기폐경…
난자 제공도 생각 해야 할때?
불임치료 전문 병원에서 검사 후, 치료를 시작하였는데 바로 조기 폐경이라 난자가 자라지 않으니
포기하라는 선생님의 말씀. 병원에서 난자제공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른사람의 난자로 임신을
한다는것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였다는 마요씨,
하지만 현미경 수정 방법도 제안 받았지만 비용도 많이 들며,
난자제공에 대한 지식도 없으며, 아직은 그래도 방법이 있을거라고 생각하여 버티며
인터넷에서 자연적으로 난자를 만들 수 있는 병원을 찾아 내원하였습니다.
다른 병원에서 다시 체외수정 시작, 당시 마요씨는 일을 계속 하면서 치료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말에는 먼곳에 있는 클리닉에 가야 하는 빡빡한 스케쥴로 진료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사실 통원하면서 많은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같은 고민과 처지를 가진 친구들과
쇼핑이나 점심을 먹으면서 기분전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년동안 배란을 하였지만 3번, 그것도 모두 공난포, 미성숙한 난자였습니다.
이 1년 동안 남편과 함께 열심히 노력하며 치료에 임했다고 생각하였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마요씨.
그 뒤로 다른 불임 치료 전문의에게 상담을 갔다가 처음으로
난자제공에 대해서 정확한 설명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입양이 좋을까라고 생각하였는데, 난자는 다르지만 내가 직접 낳는것도 좋으며,
아이를 원하는 강한 마음이 있었고, 향후의 삶과 치료비 다양한 선택항목 중,
원하지 않는것을 제하고 최종 결론은 난자 제공으로 향하였습니다.
난자제공이라는 진료를 남편과 함께 받아 들이니 훨씬 더 힘이 되었다는 마요씨.
고민보다는 둘이 함께 앞으로 나아가다.
대만에서 난자제공 치료 시작
병원에서 이야기를 들은 바로는 미국이였지만, 진료비가 많이 비싸고 성공 결과도 많이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하였다는 마요씨, 그 후 인터넷에서 조사한 결과 오사카에서
난자제공 설명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을 접하였고,
설명회는 홍지클리닉이 일본에서 처음 개최한 설명회였고,
호텔의 행사장에 도착하니 불임으로 어려움을 겪는 부부들이 많이 있어 놀라웠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많이 안심이 되었습니다.
설명회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홍지클리닉으로 진료 예약을 했다는 부부,
비용이 저번에 듣던대로 미국의 절반 정도로, 일본이랑도 거리도 가깝고 괜찮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일본 직원도 많이 서포트를 해 주었고 소통상 문제도 없었습니다.
원장님도 34세 OK! 직장은 계속 다니고 임신은 저에게 맡기세요 라는 말에 감동받았습니다.
설명회 개최 1개월 후에, 부부가 함께 대만 홍지클리닉에 내원,
바로 치료 과정에 대해 설명, 검사, 정자 동결보존, 기증자 선별까지 한번에 진행되었습니다.
요구한 것은 혈액형 일치, 피부가 하얀편, 쌍커풀, 아내를 닮은 점 4가지 조건만 리스트업 하여,
기증자의 사진은 우리가 직접 볼 수 없지만 직원분들이 아내분과 비슷하고 출산 경험이 있는
20대로 선별해 주셔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2개월 후에는 기증자가 배란치료 후 배란이 되어 난자를 채취,
다시 1개월 후에 저희 부부가 대만으로 가서 이식 다음 달, 착상하여 임신하였습니다.
그 후, 안정기까지는 집에서 다닐 수 있는 국내 불임 치료 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 통원하여
검사 결과를 대만에 보내고 투약 등의 지시를 메일로 받고 순조롭게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요씨의 지역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무사히 딸을 출산하였습니다.
자신의 뱃속에서 키우고 낳은 아기는 기쁨
안기는 아기를 보며 정말 귀엽다고, 미소가 가득하였습니다.
그동안 생각했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간지 모르고,
고민했던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민하는 시간은 우리가 나이가 들고 있었고,
전에 고민했던 현미경 수정도 난자제공때 진행되었으며 저는 아내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이 일 입니다.
미래 이 아이에게 출생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 할 것인가?
마요씨는 그때가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남편과 함께 논의한 후,
그 시점이 오면 이야기 하려고 계획하였습니다 라며, 현재 육아 휴직 중인 마요씨.
이 시간을 아끼고 육아에 전념하고 싶다고 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