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준코상의 경우……

딸에게 형제자매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대만에서 난자제공 수령받는것을 주저하지 않고 결정할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응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후쿠오카현 42세 난자제공으로 쌍둥이 출산

인공수정 3번, 체외수정을 2번을 했지만 임신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난자제공을 받고 한번에 쌍둥이를 임신해 출산했습니다.

장원장님 클리닉 모두 직원분들, 저의 난자공여 해주신분 덕분에

우리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너무 감사드려요~

임신하고 35주까지는 아무일 없이 순조로웠지만, 36주가 들어서면서 몸이 힘들어져

늘어지고 결국 임신중독증이라고 병원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혈압이 높아지고 소변에 단백질이 배출되고 발이 많이 붓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우선 건강하다고는 했지만, 저의 몸은 임신을 겨뎌낼 수 있을정도가 아닐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예정대로 2월2일 병원에 입원을 했고 자연분만으로 출산하려고 했지만,

주치의 선생님이 아이와 산모의 신체부담을 생각해서 좀더 빠르게 확실히 나오게 하는게 좋고

그러기 위해서 다음주 정도에 제왕절게로 수술하는게 좋다고 말씀을 하셔서 그렇게 하게되었습니다.

병원의 상황에 따라 4일에 출산하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가지 불임치료로 힘들게 고생했던 우리가족에게 큰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고생이 많았던것 만큰 아니가 너무 이뻤습니다.

태어나서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너무 기뻐서 눈물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별탈없이 태어나준게 너무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가족 모두 기뻐했습니다.

장원장님께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가족모두 함께 소중히 키우겠습니다.

난자공여해주신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릴수있다면 꼭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장원장님, 클리닉의 직원분들, 난자공여해주신분 모두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와 같은 불임치료로 고생하시는 많은 사람들이 장원장님의 힘으로 행복하게 해주세요.

이 감동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해 주세요.

저의 몸사태가 안정된다면 수정란 이식도 생각해보고싶습니다.

그때 다시 부탁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2014년 3월 7일 타이페이 ART 클리닉에서 난자제공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2015년 2월 4일 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딸을  출산한 후 ,폐경이 되었습니다. 치료와 고령에 대한 불안함을 뛰어넘어,

대만에서 난자제공을 선택한 준코상과 , 준코상을 열심히 응원해준 가족의 이야기

나이가 점점 들어가는것에 대한 조급함을 솔직히 전하고, 결혼까지

현관을 열고 마중나온 준코상(44세). 준코상의 품에서 새근새근 편안하게 자고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또 다른 아이도 아빠의 품에서 자고있습니다. 그 옆에서 씩씩하게 얘기하고있는 딸 (4살).

올해 2월 남자 쌍둥이가 태어나 활기차고 행복한 다섯명의 가족의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친구의 소개로 부부가 만난것은 7년전, 준코상이 37세 이었습니다.

“ 제 나이가 적지않아서 바로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라고 준코상이 말했습니다.

마음을 곧바로 전해, 남편과 교제1년정도 후에 바로 식을 올렸습니다.

바로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임신이 되었다가 유산이 된것을 2번이나 겪었습니다.

“이거 좀 이상하지않나?” 라고 생각될 정도로 불안감이 지속되었지만,

3번째 딸이 자연임신되어 출산했습니다.

그때 당시 자신이 불임치료를 할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딸에게로부터 나온 말이 , 치료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딸을 출산하고 준코상이 40세가 되었던해. 꿈이 이루워져서  3가족의 생활이 행복했었습니다만,

어느날 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왜 우리집에는 아기가 없어? 나 언니가 되고싶은데…”

친한 친구집에 놀러가면 남동생이나 여동생이 있는데 자기만 혼자라면서.

이런 질문을 받을때마다  “ 딸이 원하는것을 만들어주고싶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준코상에게는 불안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사실, 딸을 출산하고 생리가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과거를 회상해 보면, 10대에  한달에 10kg정도 무리하게 다이어트해서 생리가 반년간 멈춘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리불순이 오랜시간동안 지속되었었습니다.

2번째 아이가 가능할까라고 딸을 출산한 산부인과의 선생님에게 상담하고,

준코상에게는 처음으로 불임치료가 시작됐습니다.

우선 약물치료로 생리를 조절하는 치료를 시작해, 부부관계를 해야하는 배란일정을 알려주면

거기에 따라 진행을 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인공수정에 도전했습니다.

2회 인공수정을 했지만 모두 착상이 안되었고, 1년간의 치료로 제 몸과 마음은 너무 지쳤습니다.

선생님은 좀더 해보는건 어떠냐며 저를 격려해 주셨지만,

불임치료 전문이 아니라서 인공수정 시술만 가능했습니다.

시간도 없었고, 좋은결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힘이없는 준코상에게 남편은

“ 딸이 있으니까 둘째는 없어도 돼”라고 몇번을 얘기했었습니다. 하지만 준코상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 딸을 위해서 그것만큼은 해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든

하고싶어서 인터넷으로 불임치료전문 클리닉을 검색했습니다.

입소문으로 평판이 좋고, 실적도 있고, 게다가 집에서 멀지않아 통원하기

어렵지 않은 이유로 “센토마자 불임센터”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병원이었고, 기분전환도 하고싶어 다니게 되었습니다

소개장을 들고 통원한 첫날. 첫인상은 “환자가 매우많은 병원” 이었고,

불임치료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걸 보고 놀랬습니다.

초진때, 둘째가 안생겨 불임치료를 하는건지 병원에서 저희에게 몇번을 확인했습니다.

남편을 설득해 여기까지 온 준코상은 치료를 원해서, 우선 검사를하고 체외수정을 하기로 했습니다.

“ 인공수정은 해본적이 있고,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는것도 아니고,

확률이 높은 체외수정을 하고싶다” 고 선생님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첫번째 체외수정시 착상했지만 4주째에 유산했습니다. 3개월간 자궁을 좀 쉬게하고,

두번째 시도했지만 임신되지는 않았습니다. 저의 난자는 무리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

1번만 시도해보려고 했으나 난자채취 자체가 안됐습니다. 급하게 인공수정도 시도해봤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제 자신의 난자로는 무리” 라고 준코상은 확신했습니다.

자기 난자를 사용하는것은 무리이므로대만에서 난자제공을 받기로 했습니다

40세를 넘어서 시작한 불임치료. 잡지나 인터넷으로 여러가지 정보를 찾던

준코상은 난자제공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기 난자를 사용하지않는경우, 다른 방법이 없을까하고 찾아봤습니다.

젊은 여성의 난자를 제공받아 하는 방법이 자기와 맞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난자제공에 대한 법적제도가 정비되어있지 않다는 것,

불임의 원인이 고령이라면 국내에서 난자제공을 수령할수 없다는 것,

일본은 불가능하지만 외국은 가능하다는것을 센토마자 다나카 선생님으로부터 자세히 설명을 들었습니다.

게다가 구체적으로 대만과 미국이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것도 설명해 주셨습니다.

미국의 경우 비용이 최저 500만엔 (한화 5000만원이 조금넘음)인데,

대만에서는 200만엔정도(한화 2000만원정도)의 비용으로 치료를 받을수 있다는것을 알게 되어,

다나카 선생님으로부터 추천받은 대만에서 난자제공을 받아야지라고 마음이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남편은 좀처럼 동의해주지 않았습니다.

“어떻게해서든 딸에게 형제를 만들어주고 싶어하는 맘은 이해하지만,

다른사람의 난자를 사용하는것은 다른 얘기가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

3번째 체외수정을 마지막으로 생각했지만, 전혀 다른 선택지인 난자제공.

갑자기 “ 같이 대만에 가고싶다고” 준코상이 말을 꺼냈을때,

남편은 그냥 놀래서 아무말도 하지못했다고 했습니다.  준코상에게도 갈등이 많았습니다.

전혀 알지못하는 외국에서하는 치료에대한 불안감, 단지 아이를 “만들기”

위한 맘이 큰것은 아닌지 온갖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 하지만 아이를 갖고싶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는 시간을 두고 여러번 부탁을해서, 결국 제 이야기를 들어줬습니다.

제가 아주 필사적이었기 때문인거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난자를 사용해서 가족을 늘리는 의미,

해외에서 치료를 하는것에 대한 불암감, 부부가 서로 신중히 얘기하고, 결정한 대만에서의 난자제공.

이제 드디어 준코상의 마지막 도전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별탈없이 착상된것도 잠시, 저를 기다리고 잇었던 것은 임신고혈압증세,

가족의 뜨거운 응원이 있엇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힘을 낼수 있었습니다.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진행되는 대만의 난자제공이라는 선택

난자제공을 위해 외국으로나가는 커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인즉슨, 현재 일본에서는  질병이 있거나 의학적인 부분의 이유로 임신이 불가능한 여성이 아니고서는,

난자제공을 받기가 어렵고, 그 조건또한 매우 까다롭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센토마자 불임센터”에서 치료를 받고있던 준코상(44세)도 그 중 한명입니다.

고령이 원인으로 불임의 고통을 겪는, 자기의 난자로 임신을 시도하는것을 그만두고,

대만의 난자제공을 받기로 결정. 2014년3월 남편(36세), 딸(4세)과 함께 대만에 건너갔습니다.

결정한 이유는, 대만은 “인공생식법” 이라고 하는 법이 있어 국가의 책임을 기본으로

생식보조의료를 관리 운영하고, 다른나라와 비교해봐도 안전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준코상은 자기 스스로 병원에 연락을하고, 의사선생님과는 일본어가

가능한 스텝을 통해서 편하게 소통했다고 합니다.

대만국영의 난자제공 조건으로는, 대만의 공적기관에서 부부관계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증명을 받지않으면 진행을 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공자는 비공개이며, 이름은 가명이었습니다.

연령과 학력, 혈액형, 국적과 같은정보도 어느정도 선택이 가능합니다.

“ 이런 조건은 별로 신경이 안쓰였지만, 딱 봤을때 일본인의 느낌과 많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에

머리카락과 피부색만 조건을 제시하고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준코상이 선택한 제공자는 10여명의 후보자에서 2명.

20세의 직장인과 21세의 학생. 결국 21세의 학생으로 결정했습니다.

국가의 법률에 준거해서 공적기관에서 부부의 증명을 하고,

병원에서 기본적인 검사와 정액채취를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2개월후 제공자의 난자와 남편의 정자와 수정을 시켰다는 보고를 받고,

준코상은 6월에 혼자 대만행에 몸을 실었습니다. 2개의 수정란을 자궁안에 이식하고,

그 다음날에 귀국했습니다. 3주후 임신판정 검사를 위해 그동안 다녔전 센토마자 불임센터에 방문했습니다.

사전에 미리 임신테스트기로 양성을 확인했지만, 그것이 확실한지 어떤지 “ 불안했다” 라고 준코상이 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2개의 수정란이 별일없이 착상된것을 확인했고, “ 한번에 2명의 가족이 늘어난다” 라고

생각하니 너무 기뻤고,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아이를 출산하는건 목숨을 걸고 하는 일그렇게 엄마가 된다

임신자체가 너무 기쁜일이지만 마냥 행복할수는 없었습니다.

40세가 넘어서 하는 임신은, 준코상에게 쉬운일은 아니었습니다.

임신5주째에 조기유산 위험의 가능성이 있어서 10일정도 입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딸을 임신했을때는 없었던 입덧이 매우 심했고, 움직이기 힘들정도로 몸 상태가 매우 않좋았고,

뭘먹어도 물만 마셔도 속이 않좋아 계속 토하는 나날이 지속되었습니다. 36주에는 임신고혈압증세가 생겼습니다.

소변에서 단백질양이 많이 증가해서 서있어도 앉아도 붓기가 아주 심했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보내고 2월초에 제왕절개로 출산했지만, 출혈이 많아서 수혈을 받기도 했습니다.

“ 엄마는 항상 목숨걸고 아이를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아이들은 진짜 저의 아이들입니다.

거기에 난자가 어떻다 , 유전자가 어떻다 라고, 의론을 제기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자제공은 남성에게 위화감이 많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여성은 제공받은 난자를 사용해 자신의 자궁에서 아이를 기르는것입니다.

그 사이에 엄마가 되고,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완전이 떨어질수 없게 됩니다.

” 37주 하고도 2일후 태어난 남자 쌍둥이. 히카루는 2900g, 노조무는 2200g .

예상보다 크게 태어나서 건강하게 가족의 품으로 들어왔습니다. 남편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 체외수정이 마지막이라고 얘기했지만 , 대만? 난자제공? 이라고,

어떻게 이런 단어가 입에서 나오는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정했기때문에 진행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번에 2명의 가족이 늘어난것은 건강한 난자와 정자가 수정이되어

만들어진 2개의 수정란을 이식했기 때문에 당연히 일어난 거라고 생각하고,

감격스러운 기분이었습니다. 제 아내는 아이를 낳은 부모이자 키우고 있는 부모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아이를 낳은것을 곁에서 계속 지켜봤습니다. 부모의 모습은 하나만 있는것은 아니고,

어떤 걱정이나 근심도 없습니다. 만약에 딸과 아들들이 난자제공에 관해서 물어본다면

기꺼이 알려줄 것이고, 알려주면 아이들이 더 질문을 하겠지요, 그렇게 아이들에게  다 알려주고 싶습니다.”

 

 

미래의 엄마가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저의 체험담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내에서 몇년전부터 난자제공에 관한 의론이 있어왔습니다.

난자제공에 의해서 태어나는 아이들의 복지와 권리, 장래에 부모자식간 관계에 문제는 없는지,

제공자의 프라이버시 등, 윤리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부분들을 신중히 해야하기 때문에 의론의 진전이 없는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불임치료를 시작하기전는 결혼하면 40대중반이 되어도

자연스럽게 임신이 되고 출산할수 있다고 준코상은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치료를 시작해 “난자의 노화”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20대 30대도 노화를 비켜갈수 없다는 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더 어렸을때, 아니면 어린이때부터 교육받았으면 더 좋았겠다라고 생각합니다.

취재를 하기전에 취재를 꺼리는 마음도  있었지만, 난자가 노화되는 사실과

그 영향이 남녀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알려지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출산하길 바라고 조금이나마 불임치료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힘이되고 싶습니다.

다른것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창피한 일은 하지말아야지 라고

생각한 마음이 컸기때문에 이렇게 여러분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출처: 여성을 위한 건강생활 매거진 jineko vol.27 2015 Aut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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